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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er

비극 그 자체, <메디아>

 비극 그 자체, <메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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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금요일, 연극 <메디아>를 보러 명동 예술 극장에 다녀왔다.

고대 그리스 비극인 <메디아>를 로버트 알폴디가 연출하고, 이혜영 배우와 국립 극단이 풀어냈다. 비극에 대해 공부를 한 상태여서 내가 배운 비극이 어떻게 무대에서 보여지는지 매우 궁금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됐다.




 <메디아>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으로 일컬어진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극 중 인물의 내면 묘사를 아주 섬세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메디아>도 그렇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배신으로 인한 분노를 파격적이게 보여주었다.

 평생을 남편 ‘이아손’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메디아. 그와 두아이를 낳고, 모든걸 그에게 걸었다. 하지만 이아손은 메디아를 버리고 ‘크레온’ 왕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다고 하고, 메디아는 나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메디아는 커다란 분노와 상실감을 느끼지만, 이아손은 오히려 메디아의 분노를 질타한다. 결국 메디아는 엄청난 복수를 계획해 실행에 옮긴다.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 당한 메디아는 이아손의 정략 결혼 상대인 크레온의 딸은 물론, 크레온까지 죽이는 데 성공한다. 또 아주 극단적으로,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까지 죽여버리고 그것을 발견한 이아손의 손에 메디아도 죽는 것으로 연극은 막을 내렸다.

 메디아가 두 아들을 죽인 부분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메디아는 어떻게 자기가 낳은 두 아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엄마로서의 모성애이라던지, 책임감이라던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모두 증발해버린걸까? 하지만 메디아는 남편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특히 여자로서 엄청난 분노와 배신감에 시달렸다. 당시 그리스에서 여성의 인권은 매우 불평등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극에서 메디아가 이런 말을 한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사느니, 전쟁통에 세 번을 나가는게 낫겠다”라고.. 그래서 메디아는 두 아들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존재조차 파괴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 받을 여지조차 남기지 않은 것이다. 메디아의 선택이 잔인하고, 극단적이지만 비극의 장치로써는 정말 와닿았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두 아들까지 죽였을까..라는 생각으로 메디아를 이해하게 되었다.

 메디아는 결코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다. 특히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메디아는 강하다는 표현도 부족해 “광적인” 캐릭터다. 이혜영 배우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다. 이혜영이 아니면 누가 메디아를 연기할 수 있을까. 일반 군중의 시각을 대변하는 국립극단의 연기는 조금은 아쉬웠지만 몰입을 깰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특별한 장치 없는 허전한 무대를 배우와 연출이 꽉 채웠다. 앞 뒤로 움직이는 의자, 그리스 비극이지만 현대의상을 입고 나오는 국립극단, 그리고 메디아 자체를 보여준 이혜영 배우까지. 꽉 차다 못해 끝나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주는 연극이었다.